실제로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자신의 주택을 개조하거나 스탠드를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의 작품성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소위 클라이언트들이 기피하는 건축가였다.
실제도 리차드 마이어가 총 공사비 1조원 규모이 게티 센터를 설계하면서 명성을 떨칠 때, 게리는 당시 LA건축심의위원으로 디자인 회의에 한쪽 귀퉁이를 채우던 건축가에 불과했다.
젋어서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심리상담소를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만났던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다가 지금의 박물관을 많이 짓던 건축가로 일이 풀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술 VS 건축
프랑크 게리는 시종일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직관적인 디자인을 통해서 예술과 건축의 경계에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 해왔다.
복잡한 디자인을 하더라도 피터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는 끊임없이 이론을 만들어내어서 자신의 디자인 프로세스의 논리성을 강조한 반면, 게리는 그와 반대로 자신이 디자인한 이유를 자신의 유년기의 경험과 같은 감성적인 이유로 논리적인 면보다는 직관적인 이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독 물고기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데, 그 이유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에 할아버지께서 안식일 명절 때 생선요리를 항상 해주신 데 연유한다.
이때마다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물고기를 가져와서 몇일 전부터 욕조에 넣어 놓았고, 어린 프랑크 게리는 유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물고기의 형태와 빛에 따라서 변화하는 물고기 비늘의 느낌을 건축적으로 추구해 왔는 데, 그러한 노력이 기술적으로 완성되면서 지금의 게리 건축 스타일이 구촉된 것이다.
이렇듯 비논리적으로 건축에 접근했기 때문에 좀더 아티스트적인 면이 부각되고, 따라서 독보적이고 흉내낼 수 없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솔직한 면이 마음에 드는 장점이지만,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젠만처럼 많은 추종자가 있는 그만의 디자인 계파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 게리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아이젠만이 종로에 깡패조직을 가진 김두한이라면, 게리는 만주벌을 혼자 다니던 주먹 시라소니라고나 할까?
계리는 작품 초기부터 유기적인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가 디자인한 조명기구를 보면, 물고기나 뱀의 모양을 하고 있는 데, 실제 제작한 방식을 살펴보면, 켄트지를 손으로 찢은 후 풀로 조심스럽게 붙여서 그 형태를 만들었다.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장인정신이 보이는 최고의 스탠드 조명기구다.
같은 원리가 그대로 건축에 적용되어서 건물이 만들어지는 데, 다른 점이라면 캔트지라는 종이 대신에 타이태니움이라는 금속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태니움은 치과에서 보철을 할 때 사용하거나 우주왕복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등 의료분야와 항공분야에서 사용하는 고급재료인 데, 빛의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색상과 재질이 다르게 보이는 속성 때문에 게리가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스탠드를 만들 때 사용했던 종이와는 달리 금속은 종이처럼 랜덤하게 건설현장에서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정교하게 컴퓨터로 제단하고 공장에서 기계로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